#월연화 두 번째 기억

2025-11-02 20:25

기척을 죽여야만 살아남는 곳

이곳은 그런 곳이야

조용하게 없는 듯이 숨죽이고 있어야만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길러졌으며 살아왔어

그 모든 것에 우리의 의사는 없었을 뿐이야

때때로 조금 큰 아이들이 몰래 돌아와 작은 아이들을 데려가

바깥으로 나가면 똑같이 배를 곪아도 맞지 않으니까

하나씩 몰래몰래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고

나는 특이한 머리 색을 가졌지

내가 이곳에 오래 남게 된 건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그래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지냈어

나는 보고 들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들은 것을 따라 해 내 것으로 만들었고

본 것을 따라 해 내 것으로 만들었어

큰 아이들이 한 번에 데려가지 못한 아이들은 내가 지켰어

그런데 오늘

작은 아이가 죽었어

그냥 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저 작은 갓난아이가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배가 고파 울었을 뿐인 아기가

그저 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