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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우주 @[email protected]
잼얘란 잼 이야기입니다
2025-01-12 22:51이런 의미에서 진짜 잼 이야기 하나 해보자면, 지금은 가지 않지만 여름날 시골에 갈때마다 절 설레게 하던 것 중 하나는 이웃집 마당에 자라던 무화과나무(마음대로 따도 된다고 하셨음)에서 자란 여름마다 열리는 자기 멋대로 자란 무화과들을 빨간 양파망과 대나무로 만든 잠자리채로 따 먹으면서, 남는 못생긴 무화과들을 모아다가 만드는 수제 무화과 잼이었어요.
빵을 정말 좋아하시던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있는 빵집에 나가셔서 식빵을 잔뜩 사가지고 오시면, 간식으로 무화과를 잔뜩 먹어 배가 부른 채 낮잠을 자던 저는 할아버지가 사오신 식빵에 유리병에 넣어서 냉장고에 식힌 무화과 잼을 먹곤 했어요.
할머니가 해주신 무화과 잼은 정말 맛있었는데, 따로 방부처리는 하지 않아서 할머니 댁에 방학 내 있는 동안 잼 병의 바닥이 보이면 그 때는 방학이 끝날 즈음이 다 됐구나 하는 신호였어요.
그러면 저는 이제 창고에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양파망과 대나무로 만들어주신 최고의 잠자리채를 두고 내년 여름을 기약하며 할머니 댁에서 잡았던 수많은 굼벵이 껍질과 매미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어요.
아직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무화과잼과 딸기잼의 식감이 기억나는데, 시판되는 잼보다는 점성이 확실히 모자라서 많이 묽었고 그걸 할아버지가 쓰시던 때탄 은색 숫가락으로 한웅큼 퍼서 식빵 위에 치덕치덕 바르고 반으로 접어 먹고나서는 꼭 옥색 머그잔에 따라둔 우유를 꼴깍꼴깍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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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약간 잼얘(진짜 잼 이야기) 쓰다가 수상하게 비중을 준 물건이라면 역시 양파망과 대나무로 만든 잠자리채겠지요.
문방구에서 산 플라스틱 잠자리채가 망가져서 슬퍼하던 휘두르고 다니라고 제 키하고 비스무리한 가볍고 가느다란데 튼튼한 대나무와 방금까지도 양파를 담고 있던 빨간 양파망으로 만들어주신 수제 잠자리채는 어린 날의 여름방학에 있어서 가장 뇌리에 남는 물건이에요.
물론 진짜 철없는 어린아이였던 저는 신난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온동네 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아 연두색 곤충채집통에 넣고 할아버지가 밭일을 가신다고 농약사 이름이 적힌 모자를 쓰고 경운기를 모시면 경운기 뒤에 털썩 앉아서 시골 흙길을 가는 경운기 위에서 만들어주신 잠자리채를 들고 덜덜덜덜 떨리는 소리가 재밌다고 아~~~ 하고 소리를 질러대곤 했었어요.
- 지금은 가족사정때문에 시골에 가지 않게 되었는데 약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상적인 여름은 할아버지 살아계셨을 적의 그 여름 인 것 같아서 이야기하기 너무 좋아해요.
새 집을 지으시기 전에 살던 집에는 마주보는 처마 사이에 제비집이 두 채가 있어서 여름이 되면 이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뛰어다니며 살았답니다.
제비집이 지어진 서까래의 맞은 편에 있는 서까래에도 똑같이 제비가 집을 지어둬서 맑은 날이던, 흐린 날이던, 비가 오는 날이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던 저 뒤에 있는 지붕이 있었는데 없어진(제가 어렸을 때에는 이미 지붕이 없던 지 오래였어요) 곳을 통해 새가 날아당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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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스토돈에서 했던 잼얘에서 나온 의식의 흐름으로, 혼자 어렸을 적의 여름이라는 향수에 짤막하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들 양파망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최고의 잠자리채를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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